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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기고] 누구의 잘못도 없는 관계

by 밝을명인 오기자 2019.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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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혜 동화작가 지망생(청주시 상당구 수동)



[다시 걷는 동화의 숲] 어린왕자


문득 예전에 다 읽은 책이 다시금 읽고 싶어지는 때가 종종 있다. 내 마음을 따라 책을 펼치면 그곳에는 지난 번에 읽을 때 무심코 지나쳤던, 생소한 글귀가 내 마음을 두드린다.


다 읽은 책을 다시 한 번 읽는다. 그리고 또 다시 읽는다. 책은 언제나 그대로인데 매번 다른 내용이, 다른 글귀가 내 마음을 두드린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책이든 책을 다시 읽으면, 매번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내 마음에 새겨지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린왕자’를 수도 없이 읽었다. 몇 번을 읽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그런데 신기하게도 책을 다 읽고 나서 내 마음에 진하게 새겨져 여운을 남기는 부분은 매번 달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지만 평소와는 달랐다. 몇 일 전, 갑자기 ‘어린왕자’가 읽고 싶어져 책을 꺼내든 나는 책을 읽으며 어느새 충격에 빠졌다.


처음 ‘어린왕자’를 마주한 그 순간부터 얼마 전까지, 몇 번이고 ‘어린왕자’를 읽으며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부분이 내 마음을 흔들며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어린왕자의 장미를 좋아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책을 반복해서 읽는 동안, 단 한 순간도 장미를 좋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뽐내기를 좋아하고 거짓말도 잘 하며 말도 밉게 하는 새침한 장미는 쉽사리 정이 가지 않는 캐릭터였다.


심지어 어린왕자가 떠나던 날 장미가 슬퍼하는 장면을 읽다가 ‘그러게, 진작에 잘했어야지. 쯧쯧’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문득, 어린왕자를 다시 읽다가 장미는 단지 서툴렀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태양과 함께 태어났다고 이야기하던 장미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도, 불어오는 바람도, 관심이 가는 만큼 관심을 받고 싶었을 그 마음까지도. 누구나 처음은 서툴기 마련이다.


장미는 단지 어떻게 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하는지, 어린왕자와 더 가까워 질 방법은 뭐가 있을지 잘 몰랐던 것 아닐까? 서툴지만 나름의 최선을 다해보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장미와 어린왕자의 이별은 그저 아름다운 장미의 말을 믿었던 어린왕자도, 서툴기에 어린왕자에게 상처를 줬던 장미도, 그 누구도 잘못한 것이 없는 거겠지.


관계에 있어 순수한 믿음도, 서툰 진심도 잘못은 아니리라 믿고 싶은 나이기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자신의 별로 돌아간 어린왕자가, 자신을 기다리던 장미에게 다른 별을 여행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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