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에디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육체적인 아픔과 정신적인 오감을 인지하고 있는 지금 나 자신이 꿈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나’자신은 분명 또 다른 현실 속, 그러니까 진짜 세상 어딘가에서 지금 이 순간 '나'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 꿈의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다. 지금 내가 존재하는 것은 진짜 현실의 내가 꾸는 꿈의 일부분이다. 꿈 속에 있는 지금의 '나' 자신이 이 것이 진정 현실의 내가 꾸는 꿈의 일부분이라면 두려울것없이 도전해봐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진짜 현실은 따로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믿고 좀 더 포괄적으로 확대해보자. 진짜 현실에 '나'는 어쩌면 '지구'가 아닌 곳에 진짜 내가 있는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칠흙같이 어두운 광활한 우주. 그 어딘가에 존재할 다른 행성에서 지금의 나를 꾸는 것은 아닐까. 그 진짜 현실의 나는 인간이라고 불리는 모습일까. 아니면 벌레일까.
또 아니면 식물일까. 돌일까. 사람의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짜 현실의 내가 꿈을 꾸고 있는 지금의 나를 통제할수 없다는 의미다. 이것이 통제되지 않는 무의식이다. 지금 내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진짜현실에서 꿈을 꾸고 있는 그들 자신은 통제되지 않는 무의식의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무의식은 통제할 수 없다.
꿈 속의 지금 나는 현실의 내가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 여기서 놀라운 생각이 또 든다. 사람은 꿈을 꿀때마다 매번 다르다. 같은 장소가 아닌 새로운 에피소드를 만들어 낸다. 그만큼 무의식 자체인 나는 꿈속의 삶을 개척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짜현실의 '나'라는 존재는 지금 이 순간 하나의 꿈의, 이야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만약, 지금 내가 잠을 자므로 인해 꿈을 꾼다면 그 꿈속의 나는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나는 무수하게 많이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그럼 최초의 나는 없다. 내가 죽는다던지 늙어 사라진다던지 하는 것은 사실 무수히 많은 내가 꾸는 꿈 중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또 다른 '나' 자신이 '나'를 꿈 꾸고, 그 꿈 속의 '나'는 또 나를 꿈 꾸고, 뫼비우스의 띠 처럼 무한의 반복을 거듭하는 것은 아닐까. 니체가 말한 ‘영겁회귀’와 비슷하다고 해야할까. 그도 지금 현실은 현실이 아닌 꿈이라고 생각하지않았을까. 평생을 꿈에 매달려 연구한 프로이트도 나와 같은 생각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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