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자기 소식톡

[오기자 칼럼] 기억으로만 남을 청주의 오랜 흔적… ‘마지막 목격자는 길고양이’ 본문

뉴스

[오기자 칼럼] 기억으로만 남을 청주의 오랜 흔적… ‘마지막 목격자는 길고양이’

밝을명인 오기자 2026. 1. 27. 18:45
728x90
반응형
SMALL

도시개발로 사라지는 청주 사직동의 한 재개발 지역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의 온기는 더는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한때 누군가의 하루가 쌓이던 이 동네는 이제 그 온기를 기억하는 방식마저 서서히 잊어 가고 있다.

건물 외벽마다 붉은 스프레이로 쓰인 ‘철거’라는 단어는 단순한 행정 절차 안내문이 아니다. 이곳의 과거를 단번에 부정하는 낙인 같은 것이고, 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도 좋지 않다는 무언의 통보 같다.

창문은 열려 있지만, 안쪽에는 아무것도 없다. 커튼도, 신발도, 웃음소리도 사라졌다. 한때는 말소리와 TV 소리가 섞여 흘러나왔을 공간은 이제 차가운 공기만 가득하다.

길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지만,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계단은 목적을 잃었고, 문은 열릴 이유를 잃었다.

버려진 유모차와 쓰러진 간판, 뒤엉킨 폐자재들 사이를 걷자니 세상에 홀로 남겨진 느낌이었다.

이곳은 더 이상 ‘동네’로서 기능하지 못한 채 주소만 남아 있는 장소다. 사람들에게는 곧 기억으로만 남게 될, 청주의 오랜 흔적이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씁쓸함은 짙어졌다. 재개발이라는 말은 늘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단어처럼 쓰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렇게 조용한 이별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떠올릴까. 배웅도 없고, 돌아봄도 없는 이별. 삶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시간이 멈춘 채 남겨진 것들만 하나둘 지워지고 있다.

골목을 계속 걷다 보니 길고양이들이 보였다. 사람을 피해 다니는 듯하면서도, 이곳을 떠나지 못한 존재들이다. 사람이 사라진 동네에서 끝까지 남아 있는 길고양이들은 이곳의 마지막 주민이자, 마지막 목격자일 것이다.

익숙했던 담장과 햇볕 드는 자리, 먹이를 얻던 가게 앞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모두가 더 나은 도시를 말하지만, 그 도시에서 함께 공존했던 작은 생명들의 자리는 없다. 함께 공존했지만, 함께할 수 없었던 존재들. 사라질 삶의 터전 앞에서 길고양이들 또한 조용히 떠날 준비를 하고 있길 내심 바랬다.

사람 없는 도시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도시를 배웅하는 것은 어쩌면 이 길고양이들인지도 모른다.

골목은 계속해 조용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비록 남기기 위해 찍는 기록사진이지만, 한편으론 잊히지 않기를 위해 찍었다.

영하의 날씨 속 골목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볼을 사납게 때릴 때마다, 그것은 마치 이곳을 떠나간 사람들을 그리워한 숨결처럼 느껴졌다.

 

출처 ☞ 더퍼블릭 https://www.thepublic.kr/news/articleView.html?idxno=291988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