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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은의 문화칼럼] 우리의 세계관은 12km 안에 있다.

밝을명인 오기자 2026. 1. 2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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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은 전 충청북도의회 의정지원관

문화평론가
전 충청북도의회 의정지원관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세계관이란 흔히 영화나 게임 속 설정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어떤 지식과 관점을 가지고 세계를 근본적으로 인식하는 틀을 의미한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窓)이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의 한계선 즉 ‘경계’가 곧 세계관이다. 심지어 스스로 중립적이라 믿는 이조차 ‘중립’이라는 틀로 세상을 재단하는 엄연한 세계관의 소유자다.

인류의 역사는 이 세계관의 경계를 확장해온 과정이었다. 과거 지구를 벗어나면 살 수 없다고 믿었던 인간의 경계는 기술의 발달과 함께 우주 너머로 뻗어 나갔다. 

흥미로운 점은 기술이 발달해 물리적 한계가 사라질수록 우리의 실질적인 세계관은 오히려 ‘일상’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공간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사람들에게는 국가라는 거대 담론보다 ‘내가 사는 도시’, ‘내가 머무는 골목’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자부심인 ‘로컬 프라이드(Local Pride)’는 현대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세계관이 맞닿아 있는 실제적인 경계는 어느 정도일까. 

인간은 약 12km의 반경 안에서 삶의 대부분을 영위한다고 한다. 학교와 일터, 여가와 쇼핑 등 일상의 핵심적인 활동이 이 좁은 거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교통 환경이 좋아지며 심리적 거리는 가까워졌을지 모르나, 우리의 발이 닿고 눈이 머무는 실질적인 삶의 무대는 여전히 이 12km의 기점 안에 머물러 있다.

12km라는 경계 안에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자산은 과연 얼마나 존재할까. 문화의 최전선이라 할수 있는 국립, 기업 등에서 운영하는 대형 문화시설들은 대개 이 경계 밖에 위치한다. 


그것들은 특별한 날을 잡아야 갈 수 있는 ‘목적지’일 뿐, 우리의 일상적 세계관을 구성하는 ‘배경’이 되지는 못한다.

진정한 의미의 문화 향유는 멀리 있는 권위를 우러러보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경계 안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숨 쉬듯 예술을 접하는 데 있다. 

모든 이에게 12km라는 기계적 조건을 완벽히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최대한 많은 사람이 자신의 생활 반경 안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거창한 국가적 문화 사업도 가치가 있겠으나 이제는 우리 삶의 경계선 안을 채우는 문화의 밀도에 주목해야 한다. 집 근처 작은 미술관, 골목의 독립서점,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축제처럼 우리의 일상적 세계관 안에 녹아든 문화가 많아질수록 시민들의 삶은 풍요로워질 수 있다.

결국 문화 정책의 지향점은 거대한 랜드마크를 짓는 것이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12km 반경을 어떻게 매력적인 문화 공간으로 채울 것인가에 있어야 한다. 

나의 경계 안에 누릴 수 있는 문화 '먼 곳의 문화'가 아닌 '내 곁의 문화'가 얼마나 있는지를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 김상은 문화평론가 약력

▲도서 ‘문화로 깨어나는 도시’ 공동저자
▲고려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 수료
▲충북대학교 세종국가정책대학원 정책학 석사
▲중앙대학교 예술경영학과 석사 수료
▲뉴욕주립대학교 플랫츠버그 스튜디오 아트 학사

▲전) 충청북도의회 의정지원관
▲전) 갤러리 디파트 대표
▲전)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선임
▲전) 국립청주박물관 학예연구원
▲전) 뉴욕 주립 플랫츠버그 미술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더퍼블릭 / 오홍지 기자 dltmvks@naver.com
출처 : 더퍼블릭(https://www.thepub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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