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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자 칼럼] 관광지로 걷는 애도, 아와지 유메부타이 추모 풍경 본문
일본 효고현 아와지섬에 자리한 아와지 유메부타이는 처음엔 ‘잘 만든 건축 관광지’로 다가왔다.
바다를 향해 열린 테라스, 수학처럼 정교하게 계산된 동선, 콘크리트와 자연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있는 조화. 이 공간을 천천히 걷다 보면, 유메부타이는 단순히 보기 좋은 장소가 아니라 기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묻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건축을 설계한 이는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다. 유메부타이는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이라는 거대한 참사를 겪은 지역 위에 세워졌다.
한때 개발로 훼손됐던 이곳은 재난으로 다시 한 번 상처를 입었고, 안도 다다오는 그 상처 앞에서 기억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에 걷고, 머무는 풍경으로 답한 듯하다.
그렇다고 아와지 유메부타이가 추모 공간으로 과하게 강조되지 않는다. 막힘없이 이어지는 계단과 계절마다 달라지는 식물, 바람이 머물다 흘러가는 빈 공간 속에 기억을 흩뿌려 놓는 것 같다.
이곳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느려진다. 말수도 줄어든다. 애도는 강요되지 않고, 감정만이 조용히 따라오는 것 같다.
이 장소를 걷다 문득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떠올랐다. 유가족과 시민이 요구했던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잊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표식, 추모비 하나였다.
그러나 그 작은 표식을 세우는 과정조차 쉽지 않았다. 장소를 둘러싼 논쟁,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 기억을 공식화하는 데 대한 불편함이 겹치며 시간은 흘렀다. 그 사이 애도는 개인의 몫으로 남겨졌고, 기억은 각자의 마음속에서만 반복했다.
그 긴 과정 끝에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비가 충북도청 내에 건립된다.
하지만 아와지 유메부타이를 걷고 있자니, 이 대비가 더욱 또렷해진다. 이곳에서는 추모가 도시와 관광, 일상과 분리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풍경을 즐기며 대화를 나누는 바로 그 자리에서 기억은 살아 있다. 누군가에게는 휴식의 장소이고, 누군가에게는 성찰의 공간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애도의 길이다. 그 어느 것도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 것 같다.
특히, 100개의 화단으로 이뤄진 계단식 정원은 상징적이다. 각각의 화단에는 이름이나 사건명이 크게 새겨져 있지 않다. 대신 식물이 자라고, 시들고, 다시 피어나는 과정을 반복했다.
숫자나 명칭보다 훨씬 오래 남는 기억의 방식처럼 보였다. 기억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시키는 방식, 참사를 박제하지 않고, 삶의 흐름 속으로 천천히 되돌려 보내는 것 같았다.
청주 오송 참사를 떠올리면, 아직 그 순환의 구조를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과 마주하는 것 같다.
추모비 하나를 두고도 갈등이 생기는 사회에서 기억은 쉽게 부담이 되고, 불편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때로는 조용히 덮이거나, 말하기 어려운 주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유메부타이는 다른 가능성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바다를 향해 열린 유메부타이 전망대에 서면 시야가 탁 트이면서 묘한 평온이 찾아온다. 이 감각은 충분히 바라보고, 충분히 생각한 뒤에야 도달하는 감정일 게 분명하다.
이곳에서의 애도는 울음이 아니라 호흡에 가깝다고 느꼈다.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며 살아남은 자의 책임과 다짐을 몸으로 확인하는 행위이지 않을까.
관광과 추모는 결코 대립하지 않아도 된다. 기억은 삶의 흐름 속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단편이다. 아와지 유메부타이는 그 가능성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곳을 걸을 때 청주 오송 참사를 떠올리며 마음 한편에는 씁쓸함이 남지만, 동시에 희망도 품어본다.
언젠가 우리 역시 추모비 하나를 둘러싼 갈등을 넘어, 기억을 자연스럽게 품는 공간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출처 ☞ 더퍼블릭 https://www.thepublic.kr/news/articleView.html?idxno=291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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