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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은의 문화칼럼] ‘땅콩 알레르기’가 된 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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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기자 뉴스트레이트 2026. 2. 2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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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은 문화평론가 / 전 충북도의회 의정지원관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와 문화 예술계에는 ‘안전’이라는 단어가 절대적인 지상 과제로 떠올랐다. 

창작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행정의 공정성을 확보하며, 서로에게 정서적 폭력을 가하지 않기 위한 수많은 가이드라인과 메뉴얼이 구축되었다. 분명 진일보한 변화다. 

그러나 이 촘촘한 그물망이 과연 예술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있는지, 아니면 조너선 하이트와 그레그 루키아노프가 저서 ‘나쁜 교육’에서 경고한 것 처럼 ‘과잉 보호의 역설’에 빠진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때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 내 어린이 땅콩 알레르기가 급증했는데, 원인은 뜻밖에도 ‘과도한 격리’에 있었다. 

알레르기 반응을 우려해 유치원에서 땅콩 반입을 엄격히 금지하자, 역설적으로 아이들의 면역 체계는 땅콩이라는 외부 자극을 학습할 기회를 잃었고 이는 폭발적인 알레르기 발생으로 이어졌다. 

2015년 연구에 따르면 유아기에 땅콩 제품을 규칙적으로 섭취한 아이들이 오히려 강한 면역력을 가졌는데, ‘죽지 않을 만큼의 시련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격언이 생물학적 사실임을 증명한 셈이다.

이 ‘땅콩 알레르기’ 비유는 현재 우리 문화 지형에도 비추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날 문화의 현장에는 갈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예방성 가이드라인이 넘쳐난다. 

예술가와 기관 사이의 번거로운 대화를 피하기 위해, 혹은 혹시 모를 비판으로부터 완벽하게 방어하기 위해 설정된 ‘정서적 안전지대’는 때로 창작의 불꽃을 꺼트리는 장벽이 된다. 

서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긋는 선은 당장의 평화를 보장할지 모르나, 그 선 안에서 예술적 사유의 깊이는 얕아질 수밖에 없다.

예술은 본래 매끄럽고 완벽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세계관이 충돌하며 내는 파열음, 그 과정에서 겪는 정서적 불편함이야말로 예술이 가진 진정한 힘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결점 하나 없이 매끈하게 차려진 대형 전시보다, 거칠더라도 무언가를 돌파하려 고군분투한 흔적이 역력한 전시에 더 큰 마음의 점수를 준다. 

완벽함이라는 외피를 두른 채 모험을 피하는 예술보다, 부딪히고 깨지며 내성을 길러가는 과정이 담긴 예술이 우리를 더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물리적 안전은 타협할 수 없는 가치다. 하지만 ‘정서적 불편함’조차 위험으로 간주하여 격리하는 ‘안전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비판받을 용기, 갈등을 마주할 용기,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드러낼 용기가 거세된 문화는 결국 스스로를 치유할 능력을 상실한 허약한 생태계가 될 뿐이다.

참된 안전이란 아무런 외부 자극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극에 대응하고 회복할 수 있는 단단한 자생력을 갖추는 데 있다. 

지금 우리가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세워둔 과한 안전장치들이 오히려 우리 세대의 문화적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건 아닌지 세심한 관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거친 바람은 촛불을 끄지만 모닥불은 키우듯,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서적 무균실이 아니라 거친 현장의 부딪힘을 통해 얻는 깊은 깨달음이지 않을까. 

- 김상은 문화평론가 약력

▲도서 ‘문화로 깨어나는 도시’ 공동저자
▲고려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 수료
▲충북대학교 세종국가정책대학원 정책학 석사
▲중앙대학교 예술경영학과 석사 수료
▲뉴욕주립대학교 플랫츠버그 스튜디오 아트 학사

▲전) 충청북도의회 의정지원관
▲전) 갤러리 디파트 대표
▲전)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선임
▲전) 국립청주박물관 학예연구원
▲전) 뉴욕 주립 플랫츠버그 미술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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